칼바위산392m과 오봉산284.2m / 전남 보성 득량 / 글·사진 허종행 /용추폭포~칼바위, 오봉사~각시바위 … 약 8㎞ 4시간 30분
ㅇ 보성(寶城)은 산 · 호수 · 바다의 3경과 의향(충의열사) · 예향(서편제) · 다향(차)의 3보향이 합쳐진 고장이다.
철쭉꽃이 일품인 일림산,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와 꼬막, 웰빙 바람을 타고 대중화 된 녹차에 이르기까지 태어나 한번쯤 가봐야 할 여행지로 이름이 더 높다.
남쪽 경계가 바다와 접하는 등 관광 소도시로 성장했지만 자세히 짚어보면 그 산세가 만만치 않은 곳도 보성이다. 북쪽 머리맡에 주암호를 얹은 보성군은 백두산에서 출발해 전라도를 휘도는 호남정맥의 줄기가 군의 서쪽을 감싸며 중심부를 관통하는 형국이다.
흔히 이 산줄기가 팔자(八字) 모양으로 팔을 벌리고, 그 팔 안에 보성이 자리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군의 서쪽은 제암산을 정점으로 평균 500m 이상의 높은 산맥이 있고, 동쪽은 존제산을 기준점 삼아 평균 400m 이상의 산줄기를 형성한다. 이 산맥은 고흥반도를 향해 내달리는데, 벌교읍은 이 능선의 동쪽에 해당한다. 군의 남쪽에도 약간의 해안산지가 발달돼 있지만 결국 그 끝은 드넓은 바다(보성만과 득량만)와 닿는다. 군내에 솟은 호남정맥 줄기는 제암산~곰재~사자산~일림산~활성산~봉화산~그럭재~방장산~주월산~무남이재~존제산~백이산이다. 호남정맥에서 비껴서 있지만 또 하나의 철쭉 명소 초암산, 봉황의 보금자리로 통하며 대원사를 보듬는 천봉산 등도 결국 호남정맥과 백두대간의 핏줄이 된다. 보성에는 제암산·존제산·제석산 등 임금 제(帝)자가 들어간 산이 3개나 있기도 하다. 일림산 북쪽 용추계곡에서 발원한 보성강은 120㎞쯤 내달리다 압록에서 섬진강 본류와 합류하며, 섬진강 수량을 한 뼘쯤 불리는 맏형 역할을 한다.
[산 길] 호남정맥의 쟁쟁한 산들 속에서 득량면에 솟은 오봉산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체로 다섯 개의 바위 봉우리를 일컬어 오봉산이라 부르는 탓에 전국 어디든 같은 이름을 가진 산들은 여럿 있게 마련이지만, 득량 오봉산을 아는 산꾼은 드문 편이어서 아직 등산로엔 이렇다 할 이정표나 안내리본도 많지 않다. 다만 산이 낮고 길이 단조로운데다 등산로 정비도 잘 돼있어서 산행엔 별 어려움이 없다.
1917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곡과 도촌 두 면을 병합한 득량면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지금의 득량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비봉리 선소에서 식량을 조달, 왜군을 퇴치하였다 하여 ‘식량을 얻었다’라는 뜻의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외지인들은 해평저수지 쪽 칼바위가 있는 산을 오봉산(392m), 말바위가 있는 산을 작은오봉산(284.2m)으로 각각 부르지만 득량면 오봉리 주민들은 작은오봉산이란 이름에 대해선 알지 못하고, 작은오봉산을 오봉산, 현재 오봉산으로 알려진 산은 그냥 칼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1:5만 지형도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영진5만지도’에는 두 산 모두를 오봉산으로 표기했다. 면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칼바위가 있는 오봉산과 현재 작은오봉산으로 불리는 암봉을 모두 합쳐 오봉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칼바위나 작은오봉산(진짜 오봉산) 전체는 5개 봉우리 중 일부일 뿐 도로와 마을로 능선이 잠시 끊긴 것이지, 지역민들에겐 칼바위 오봉산(칼바위산)이든 작은오봉산(오봉산)이든 모두 거대한 오봉산 산군, 오직 하나의 오봉산뿐이다.
칼바위가 있는 오봉산 산행(칼바위산으로 개명 요)은 해평저수지에 주차를 하고 원점회귀하는 게 제일 무난하다. 주차장 입구에 산행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대체로 용추폭포부터 시작해 오봉산~칼바위~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칼바위 옆 암봉에서 능선을 타고 조양마을까지 하산하는 것도 권할만한데, 이 경우 차량 두 대를 이용해 각각 등·하산 지점에 한 대씩 주차해둬야 편하다.
작은오봉산(본 오봉산)은 오봉사 옆에서 산행을 시작해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하나씩 헤집은 다음 정상인 말바위에서 각시바위를 거쳐 참다래(키위)농원이 있는 방죽마을로 내려서는 게 보편적이다. 영진문화사 지도에는 장전 혹은 방죽마을 하산로에 각각 독사바위, 구렁이바위라는 두 개의 바위를 표시하고 있는데, 실제 이쪽으로 하산하며 많게는 다섯 마리나 뱀을 보았다는 산꾼도 있는 걸 보면 그 이름이 그리 엉뚱하진 않는 셈이다.
작은오봉산(진짜 오봉산) 정상 바위군락 옆엔 득량역으로 하산하는 길도 있지만, 바위를 차례대로 보려면 오봉사에서 시작하는 게 나을 듯도 하다. 역시 차량 두 대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나 그렇지 못할 경우 하산 후 득량역에서 택시를 탄다. 오봉사 입구까지 2500원 나온다.
두 개의 오봉산은 아쉽게도 능선 종주는 불가능하다. 굳이 두 산을 잇겠다면 조양마을로 하산한 다음 도로를 건너 마을을 쭉 훑고 지나는 방법뿐인데 능선산행의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여 남쪽의 먼 길을 달려 400m가 미처 못 되는 낮은 산 하나를 산행하기도 아쉬울 터. 정상에서 바라보는 득량만 바다와 방조제 안쪽으로 뻗은 너른 평야, 기괴하게 솟은 바위들까지, 볼거리가 풍부한 두 개의 산을 모두 올라보는 것이 좋다. 두 산을 합친다 해도 순수 산행시간은 5시간을 넘지 않는다.
칼바위와 용추폭포 지리산으로 귀농한 지인의 흙집에 쓰일 구들장을 얻기 위해 오봉산에 왔을 때만 해도 파란 하늘 아래 거대한 바위벽이 장관이었는데, 취재 때문에 오봉산(칼바위산을 말함)을 재차 찾았을 땐 지독한 가을 가뭄으로 안개인 듯 황사인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날씨가 걸음을 더디게 한다.
해평저수지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에 나선다. 주차장 앞엔 칼바위로 바로 오르는 산길이 열렸지만(0.6㎞) 용추폭포부터 먼저 찾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용추폭포는 약 1㎞.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15분쯤 걸어 들어서면 계곡에 의해 길이 끊긴다. 계곡 위로 드리운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너자 본격적인 등산로다.
넓적한 돌들을 양 옆에 두고 10분쯤 올라서면 둥그런 모양으로 세워진 돌탑이 보이고(산행 중 자주 볼 수 있다), 그 돌탑 직전 오른쪽에 노란색 표지기가 나풀댄다. 표지기를 따라 내려서면 용추폭포다.
원래 가운데 본류를 중심으로 세 갈래 물이 쏟아지는데, 지독한 가뭄 탓에 명맥을 유지하는 건 겨우 오른쪽 한 줄기뿐이다. 아쉬운 마음을 돌려 다시 등산로로 돌아온다.
돌탑을 지나 30분쯤 올라서면 야트막한 암봉에 닿는다. 특별한 표식은 없지만 이곳이 오봉산 정상이다. 초행일 경우 정상을 놓치고 진행할 수 있다. 용추폭포에서 꾸준히 올라 전망 좋은 바위에 닿았고, 그 전후로 더 높은 곳이 없다 싶으면 그곳을 정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상 아래에 돌탑 2기가 있으므로 그 돌탑을 정상석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정상에 서도 딱히 보이는 것이 없어 간단히 휴식만 취하고 칼바위로 방향을 튼다. 두 개의 돌탑 뒤로 목마른 해평저수지가 흐릿하게 내려다보인다.
오롯한 산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펼쳐 보이며 칼바위까지 이어진다. 오봉산 정상(칼바위산이라고 불러줘)을 출발 20분간 진행하면 정면에 거대한 바위벽이 모습을 드러내고, 곧 비봉1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을 무시하고 올라서면 다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오는데 역시 이번에도 이 길을 무시하고 직진한다. 갈림길은 칼바위를 거쳐 하산하는 길이지만 직진할 경우에 칼바위 위쪽 바위로 올라 전망을 즐길 수 있기 때문.바위로 오를 수 있게 나무 하나가 계단 역할을 한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아찔하지만 올라서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이 바위에 올라서면 칼바위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등 주변 경관이 뛰어난데 뿌연 날씨 때문에 가까운 사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바위 정상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왔던 길을 되짚어 칼바위 방향으로 내려선다.
칼바위를 직접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안전시설물이 전무하므로 함부로 올라서지 않는 게 좋다. 용추계곡 동쪽 산 정상부에 서있는 여러 개의 암벽 중 칼을 세워놓은 것처럼 생긴 바위를 콕 집어 칼바위(30여m)라고 부르는데, 주변으로 병풍바위와 버선바위 등이 둘러서 있고 그 안쪽엔 50명은 거뜬히 수용할 공간도 있다. 병풍바위 밑으로는 마당굴·베틀굴·정제굴 등이 있으며, 정제굴 동쪽으로도 예닐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은신처가 있다. 칼바위의 구부러진 안쪽 벽면엔 원효대사로 전하는 화상 하나가 새겨져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 용추폭포에서 몸을 씻고 칼바위에서 마음을 닦았다는 것. 그렇지만 칼바위에 새겨진 원효대사의 모습을 찾는 일이나 바위와 굴의 이름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도 쉬운 건 아니다. 마치 무협지 속 세상 같다.
칼바위를 지나면 길은 줄곧 내리막이다. 27분을 내달리자 차를 주차해둔 해평저수지다.
주차장 기준 산행 코스는 대략 5㎞ 안팎이며 쉬는 시간을 포함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식수는 미리 채워가는 것이 편하다. 산 아래엔 간이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작은오봉산이 머리격 / 진짜 오봉산 임 작은오봉산 산행(앞으로는 오봉산이라고 불러줘)은 오봉사에서 시작한다. 초행이라면 오봉사를 찾는 일부터 쉽지가 않다. 동네 어르신들께 꼭 길을 묻고 진행하는 것이 낫다. 동네분들은 이 작은오봉산을 ‘오봉산의 머리’격으로 치켜세운다.
등산로는 오봉사로 들어서지 않고 건물 밖 하얀 화장실 옆에서 시작된다.
아직은 표식이 전혀 없지만 무덤이 여러 기 있어 길은 좋은 편이다. 무덤이 나오면 무덤 뒤쪽 길로 들어선 후에 오른쪽 능선을 타고 산 정상부로 올라선다.
10분을 미처 오르지 못해 너른 마당바위에 닿는다. 이 바위에 서면 황금빛으로 물이 든 예당평야와 그 너머 득량만 바다, 고흥반도, 가깝게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 이용훈 대법원장 등을 배출한 득량남초등학교가 보인다.
마당바위부터는 줄곧 예당평야를 등 뒤에 두고 오를 수 있다. 능선이 시선에서 멀지 않으므로 산행이 시시할 법도 하지만 정상부의 기괴한 바위들과 맞닥뜨리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주인 없는 돈을 줍는 기분이다.
사람 얼굴을 닮은 첫 번째 바위를 지나 암반 사면을 타고 이동한다. 발아래 채석장과 칼바위 능선이 겹겹이 펼쳐진 모습도 보인다.
구멍 뚫린 바위와 애벌레처럼 긴 몸뚱이를 흔드는 바위지대를 지나면 작은오봉산(진짜 오봉산) 정상인 말바위다. 바위 구간을 통과하는 데만도 40분이 소요될 정도. 바위 날등을 곧바로 타는 건 아니어서 누구든 손쉽게 지날 수 있다.
말바위를 지나면 바윗길은 끝이 나고 건너편 흙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봉우리 직전에서 우측으로 길이 흐른다. 길 중간에 우뚝 솟은 바위가 거북 같기도 하고, 두더지 같기도 하고, 다가가 아래서 올려다보면 코끼리 같기도 하다. 실제 이름은 각시바위다.
잔모래로 미끄러운 산길을 30분간 더 내려서면 시멘트길이 나오는데 그 앞이 참다래 과수원이다.
산행 거리는 약 3㎞ 남짓이며 쉬는 시간 포함 2시간이면 넉넉하겠다. 식수는 채워가야 한다.
[교통과 숙박] 서울에서 보성으로 가는 버스는 의외로 인색하다.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www.easyticket.co.kr)에서 아침 8시 10분(우등 28,900원), 오후 3시 10분(19,400원) 하루 두 번뿐이다. 소요시간은 대략 4시간 40분. 따라서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일단 순천이나 광주까지 가는 게 좋다. 순천과 광주에서는 보성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다. 각각 1시간쯤 걸린다.
서울 용산역에서 보성역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도 있다. 오전 10시 5분(무궁화호) 한 대뿐이며, 요금은 어른 기준 2만3천원, 5시간 50분 걸린다. 광주광역시 송정리와 경남 밀양 삼랑진을 잇는 경전선 철도 득량역을 이용할 수도 있다. 역전에는 택시가 대기해있는데 오봉사는 2500원이고 해평저수지까지는 6~7천원 선이다.
자가용으로 움직일 경우
동광주에서 나와 화순을 거쳐 보성으로, 순천IC를 이용시에는 벌교로 이어진 2번(77번)국도를 거쳐 득량면까지 갈 수 있다. 군머리수퍼 앞 삼거리에서 최대성 장군 유적지 ‘충절사’ 이정표를 따라 진입하면 득량면소재지 주유소 삼거리에 닿는다. 이 삼거리에서 오봉산은 오른쪽이다. 칼바위가 있는 오봉산(칼바위산) 으로 가려면 기남마을을 찾아간다. 저수지 옆에 주차장과 산행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작은오봉산(앞으로는 절대로 오봉산이라고 불러야 함)은 철길 건덜목을 넘으면 우측 큰나무(눈에 잘 띈다)가 있는 마을(하작천)로 쭉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봉사로 간다.
득량면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고, 보성읍에서 자고 다음날 이동하는 것이 좋다. 자가용 기준 10~15분 걸린다.
[주변 볼거리] 오는 11월 3일(금)부터 5일(일)까지 사흘간 벌교제일고등학교와 대포리 갯벌 일대에서 ‘제5회 벌교 꼬막축제’가 열린다. 3일엔 실버가요제·채동선음악회·민속씨름대회가 열리고, 둘째날엔 남아메리카 민속공연과 꼬막 관련 체험행사, 마지막 날엔 소설 <태백산맥> 걷기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봉산 아래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운 ‘모의장군 최대성’을 모신 충절사(사당)가 있다. 최대성은 선조 18년(1585) 무과에 급제했으며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비롯 남해 일대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동생인 대민과 대영, 아들 언립과 후립 등을 포함 의병 2천여 명을 모집해 보성·순천·광양·고흥 등지에서 송대립·김덕방·황언복 등과 더불어 2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그밖에 천년고찰 대원사, 군립 백민미술관, 서재필 박사 유적지와 조각공원, 율포해수욕장, 암반해수와 보성녹차가 어우러진 해수녹차탕, 웅치 및 제암산자연휴양림,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비봉리 공룡알 화석지 등이 있다. 보성다원으로 유명한 대한다원(차밭)은 주차료가 없지만 1인당 16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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