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교에서 효를 설하다[박도화]

한밭양반 2008. 7. 15. 10:43
문화재칼럼
불교에서 孝를 설하다 [박도화]
- 조선시대 부모은중경의 유행 -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대표적인 위경(僞經)의 하나이다. 불교 발생국인 인도에서 만들어져 전해온 경전이 아니라 중국에서 불교가 토착화 되는 과정에서 유교국가인 중국의 문화 및 유교적 정서와 적절히 융화하며 형성된 것이다. 위경의 문제는 비단 불교에만 보여지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며 종교 전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불교가 중국 등으로 동전(동전)하며 수많은 위경이 편찬되어 유통되었다. 그들의 부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중국에 보다 효과적으로 불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문화현상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372년 중국을 통해 고구려에 불교가 도입되었으므로 1,600여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뛰어난 불교문화를 일구어 왔다. 도입 이래 고려시대까지 천여년간 불교는 자연스럽게 민족의 종교적 귀의처 역할을 맡아왔으나 억불숭유(抑佛崇儒)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500여년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혹독한 핍박을 받으며 천시되었다. 그러나 그 질긴 명맥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온 연유를 몇가지 꼽을수 있겠지만, 유교적 이념과의 적절한 소통과 타협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부모은중경의 유행이 아니었을까?
부모은중경은 제목 그대로 부모의 은혜가 막중함을 설한 경전이다. 부모의 은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얼마만큼 크고 깊은 것인지, 그리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내용으로 담고 있으므로 이 경전은 불교교리라기보다는 유교의 기본개념인 효(孝)를 설한 것이다. 가족을 떠나 출가를 원칙으로 삼은 초기 불제자들에게 효의 실천을 설함으로 유교사회에 불교의 존재를 정착하고자한 의도를 찾을수 있고, 조선시대 전국 사찰의 서민 신도들에게 이 경전을 보급함으로 儒佛 교섭의 길을 모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어온 『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는 경전의 본문을 시각화한 변상도(變相圖)가 총 21장면이나 들어있어 판화사에서도 중요시 된다(용주사판은 14장면). 그런데 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경전 성립 초기부터 이러한 내용과 규모를 갖추었던 것이 아니라 초기에는 짧은 내용이었으나 유통되면서 점차 내용이 증가된 것으로 그 형성과정도 독특하다.
변상도가 그려진 장면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경전 첫장에는 부처님이 길을 가다 오래된 고골(枯骨)에게 절을 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이 경전을 설하게 된 동기 즉 이 고골이 자신의 조상일수도 있기에 절을 하였고, 그것은 부모의 은혜가 한없이 깊기 때문이라며 설법을 시작한다. 다음에는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길러주신 어머니의 열가지 은혜를 그린 10은변상(十恩變相)이 본문과 함께 전개된다. 열가지 은혜란 몸가짐을 조심하며 태아를 보호하는 은혜,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는 은혜, 해산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겪지만 아기를 보며 근심을 잊는 은혜, 쓴음식은 삼키고 단 음식을 뱉아 먹여 키워주신 은혜, 아기에게 마른자리를 내어주며 키워주신 은혜, 젖을 먹여 키워주신 은혜, 깨끗이 씻겨 키워주신 은혜, 자식이 커서 집을 떠날 때 걱정하는 은혜, 자식을 위해 악업도 마다않는 은혜, 언제 어디서나 자식을 애처롭게 여기고 위하는 은혜이다. 이 10은변상도는 도1에서와 같이 상도하문(上圖下文)식으로 본문 위에 그림이 제시되어 있어 그 내용을 더욱 강렬히 전달한다.(그림 1)

이러한 10은덕에 이어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저지르는 자식의 불효가 나열되어 있고, 그 뒤로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깊은가를 실제 행위에 비유하는 내용이 8가지가 전개된다(8譬喩). 즉 부모를 양어깨에 메고 수미산을 돌고 돌아 살이 닳고 뼈가 패여도 부모의 은혜를 다 못갚고(그림 2, 그림 3), 흉년에 부모를 위해 자신의 살을 송두리째 저미고 부서뜨려도, 자신의 눈을 도려내어 여래에게 바쳐도, 부모를 위해 자신의 심장과 간을 도려내도, 칼로 자신의 몸을 수없이 찔러도, 자신의 몸을 걸어 등불을 삼아 여래를 공양하여도, 뼈를 부수어 골수를 꺼내고 칼과 창으로 몸을 찔러도, 목으로 뜨거운 철구슬을 삼키어 몸이 타버려도 부모의 은혜를 다 갚기 어렵다는 내용이다.(그림 4)


그러면 이러한 부모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는가를 묻는 물음에 이 경을 베끼고(書寫), 독송(讀誦)하며 삼보(三寶)를 공양하라고 제시하며, 마지막으로 불효를 행하면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지고(그림 5, 그림 6) 이 경전을 조성하면 은혜를 갚게 되어 부모가 하늘에 태어나 지옥의 괴로움을 여의고 쾌락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그림 5)

부모은중경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경전 중 법화경과 금강경 다음으로 가장 빈번하게 판각되어 지금까지 조사된 것만도 80종 가까이 열거된다. 내용은 같되 글씨와 변상도의 모습을 조금씩 달리한 판종도 9종으로 구분된다. 법화경, 금강경 처럼 대승불교의 기본경전이 아님에도 전국의 사찰에서 이렇게 자주 판각된 것은 이 경전이 지닌 대중성에 기인할 것이다. 유교사회의 기본적인 개념인 효를 중시하는 주제와 마치 옛이야기를 읽는 듯한 설화적인 내용은 서민들의 심금을 쉽게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되며 여기에 본문의 내용을 간결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변상도의 존재 또한 대중적이고 교육적인 경전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어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부모은중경의 유행은 바로 조선시대 불교신앙의 한 단면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조선후기에 간행된 부모은중경변상도중 뛰어난 회화성과 섬세한 판각술로 주목할만한 것은 용주사본이다. 이 변상도는 14장면으로 구성되어 다른 은중경변상과는 색다른 도상을 보여주며 또한 본문에 삽화로 들어간 형식이 아닌 변상도만 별도로 판각한 것이다. 이 용주사본 은중경은 최근 인기를 끌며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산’의 주인공인 정조(正祖)가 보경스님이 설한 은중경을 듣고 감동하여 총애하던 화원 김홍도(金弘道)에게 밑그림을 그리게 하여 판각케 했다고 한다. 간기(刊記)에 화가와 각수의 명단은 없지만 구전대로 김홍도의 필치임을 알수 있다. 그림 2와 그림3에서도 볼수 있듯이 같은 장면이지만 요체만을 간략하고 해학적으로 판각한 언해본 판화와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듯한 용주사본의 판화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장면을 달리 표현하는 화가의 해석과 이것을 판각한 각수의 차이, 이러한 점을 분석하는 것이 판화를 보는 또 하나의 묘미가 아닐까?


▶ 문화재청 인천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 박도화 감정위원

게시일 2008-07-07 16: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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