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캄보디아-태국 여행
첫째 날 : 2005년 1월 20일(목) 17:20 방콕행 아시아나 항공(oz 341기)에 몸을 싣고 인천국
제공항을 출발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잠시 어두운 밤하늘을 6시간 달
려 방콕 현지 시간으로 20시 20분(우리와 2시간의 시차) 돈무앙( 높은 언덕 )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바람과 동시에 독특한 향 냄새가 태국에서의 산뜻하지 못한 첫 느낌이다.
수속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30분을 달려 01시 30분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도시인 아란
야쁘라땟에 도착 했을 땐 일행 모두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야란 야쁘라뗏 호텔 체크인 후
05시에 모닝콜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아무 반문도 못하고 방에 들어가자 말자 태국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둘째 날 : 처음 태국에 도착 했을 때나 야란으로 이동할 때 본 태국의 광경은 70~80년대의
우리나라 같은 느낌이었기에 아직 개발이 많이 뒤진 곳이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태국과 캄
보디아의 국경에 도착 했을 때 버스 주위로 몰려오는 다 헤진 옷에 낡은 슬리프를 신은 어
린애들의 외침(원달러)에 “지금부터 여러분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들어갑니다”라는 가이드
의 말이 실감난다. 도보로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 국경도시인 ‘포이펫에 들어가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신체적인 장애인이었다. 캄보디아 내전으로 인해 군인
뿐 아니라 수많은 양민들도 지뢰나 유탄에 맞아 불구의 몸이 된 사람들이었다. 10여분을 걷
는 동안 관광객 주위로 몰려오는 애들의 시선을 피하며 짧은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
지.
국경을 넘어 낯익은 버스에 다시 올랐다. “아시아 버스” 70년대 시내버스로 많이 이용
된 지금은 사라진 버스가 이 낯선 땅 캄보디아에서 만날 줄이야! 힘찬 시동 소리를 울리며
시소폰을 향해 140km의 먼 길을 재촉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토길! 도로옆 마을엔 상점의
간판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고, 석유를 병에 넣어 진열한 것과 동시에 일본 최신 자동차가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 한 듯한 느낌이다.
2시간여를 달려 시소폰에서 캄보디아 옥수수와 커피 한잔으로 잠시 지친 몸을 달래곤 씨
엠립을 향해 아픈 허리를 감싸며 차에 올랐다. 12시경 씨엠립에서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에
서 한식을 먹는데 약하게나마 비위에 거슬리는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아시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호수로 향한다. 지금까지 오늘길도 그랬지만 행정구역의
경계선을 넘을땐 항상 버스가 정차해서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통행료를 징수하는 그
자리엔 신체적 건강 상태가 다른 2명의 사람이 통행료를 받고 있었다. 건강 상태가 아주 좋
은(우리나라에선 비만으로 안좋은걸로 해석)사람은 군인이며, 그보다 못하지만 일반 서민들
보담은 훨씬 양호한 사람은 경찰이란다. 캄보디아에선 각 지역별로 군벌이 존재하는 데 정
부에서 군인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니까 지역별 군사령관이 자체 수입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수입원 중 중요한 한 가지가 통행료를 징수한다는 것이었다.
‘톤레샵’ 호수에 도착 했을 때 지독한 똥냄새가 코를 찌른다. 똥레샵으로 기억하면 쉬울
거란 가이드의 말이 실감난다. 캄보디아에서의 부의 측도는 승용차, 오토바이, 자전거의 순
과, 수상가옥의 크기에 따라 경제력을 측정할 수 있다는데, 작은 수상가옥인 경우 4명이 집
전체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초라한 크기이다. 어떻게 저 집에서 4인 가족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또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화장실이 따로 있는게 아니
고 그냥 호수에서 해결 한다는 것과 그 호수에서 삶의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불가사
의하다. 톤레샵에서 생계를 꾸러가는 이들은 주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인데, 그중 상당
수의 사람들이 베트남 출신이란 것이고, 그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지난 월남전과
캄보디아 내전을 거치면서 발생한 일종의 정치적 난민인 셈이란 것이다.
가히 바다라 할만한 엄청난 크기의 호수이지만 수심이 깊지 않고 건기, 우기에 따라 호수
면적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가옥의 이동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가옥들이 동력을 사용하
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학교, 오토바이점, 생필품 파는 가게, 고기를 수거하는 어시장, 꽃집..등등이 눈에 보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어린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온갖 힘든 일을
하는걸 보면서 재희, 재광이와 비교할 때 훨씬 성숙한 듯 느껴진다.
캄보디아 대부분이 메콩강 하류에 위치하기 때문에 저지대 지역인데, 우리가 갈 다음 목적
지는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68m의 고지(??)인 프롬바깽이다. 가파른 정상에 올
랐을때 사방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울창한 밀림뿐이다. 숲속으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 ~~
프롬바깽에서 색다른 일몰을 감상하면서 현지인들은 이 신성한 장소에서 가족의 무운과 행
복을 기원한다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프롬바깽을 내려와 뷔페에서 식사는 하는데, 현지식 먹거리와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 음식
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캄보디아 민속춤인 ‘압살라’의 섬세한 손놀림(농경생활
에서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표현)을 감상하면서 느긋한 만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호
텔로 돌아왔다. 각자의 짐을 대충 정리하고 호텔 수영장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밤의 수영
으로 이국에서의 둘째날 밤을 보낸다.
셋째 날 : 간단한 아침을 먹고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수천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앙코르 유적지로 향했다. 캄보디아 공무원의 급여가 대략 30$정도인데, 외국인 입장료가 20
$. 이 정도면 이 유적지의 가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맘으로 맨 먼저 앙
코르 톰의 남문을 향했다. 남문 앞 해자를 건너는 다리 왼쪽엔 54명의 선신, 오른쪽엔 같은
수의 악신들이 뱀인 배수키를 껴안고 있는데, 이 다리는 중생들의 사바 세계와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이라고 한다. 남문의 위에는 아바로키테스바라라는 신이 올려져 있는데 이는
메루산에서 4방향을 지배하는 신이다.
앙코로 톰의 좁은 문을 자동차로 통과하는데 이 성문을 통과하는 가장 큰 차가 지금 우리
가 타고 있는 이 아시아 30인승 차란다. 앙코르 톰엔 동,서,남,북 및 승리의 문 이렇게 5개
의 문이 있다고 한다. 그안에 바푸온, 바이온, 코끼리 테라스, 문둥이 테라스등이 있으며,
사방 약 3km의 정사각형 성곽이며, 과거 중국 당나라때 장안의 인구가 100만이었다고 하는
데 이곳 역시 1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였다니까 규모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남문을 지나 바이욘 사원을 향했다. 이 사원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앙코르와트 보
다 100년 후인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기엔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
54개 부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35개가 남아있고 사원의 벽면엔 그 당시의 생활상들이 세밀
하게 부조되어 있었다. 전쟁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준비가 음식, 돼지를 잡는 모습,
코끼리를 탄 장군과 칼, 창을 들고 행군하는 군인, 신분에 따른 계층을 구분하는 복색이며,
다양한 직업들 등등
계속해서 바푸온 사원을 향했다. 우리가 도착 했을땐 프랑스 기술자들에 의해 복원 공사
중이었으나 오랜 내전으로 인한 파괴와 관리 소홀로 인해 거의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라는게
안내인의 설명이다. 이어서 어느 공주를 위해 지었다는 피미아나가스와 당시 국가의 큰 행
사나 군인의 사열을 했었다는 코끼리 테라스에 서서 잠시 웅장했을법한 그 광경을 상상하고
다음 목적지인 톰 레이드의 촬영지였던 ‘따 프롬’을 향했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사원으로 가로 600m, 세로 1,000m의 웅장한 사원이었는데, 오랜 세월 인간의 손
길이 닿지 않아서 인지 무화과, 보리수 나무의 뿌리에 의해 복원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나무의 뿌리로 인해 사원이 파괴되긴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
부 뿌리로 인해 그나마 무너지지 않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어머니를 위한 방 곳곳엔 작은
구멍이 보이는데 이 구멍마다 보석을 박았다고 하니 아들의 효심이 어느 정도였을까 ?
마지막으로 앙코르 유적지 중 최고라 칭하는 앙코르 와트를 향했다. 앙코르는 도읍이란
의미이고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므로 사원의 도읍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이곳 대부분의 사원
은 동쪽을 향하는데 반해 이곳은 서쪽을 향해있는데 사후 세계를 염두에 둔것 같다고 한다.
이 사원은 수리아바르만 2세때 매일 2만명을 동원하여 37년간 지었다고 하니 그 당시 왕권
의 강력함이 어느 정도였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사원 벽면에 미물계, 현실계, 천상계가 부조되어 있는데, 온갖 종류의 악신과 선신이 그
려져있으며, 앙코르 인들의 전투장면 및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부조되어 있었다.
앙코르 와트의 가장 높은 첨탑을 향했다. 경사가 거의 80도에 이럴 정도로 도저히 두발로는
갈 수 없는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었다.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땐 낮은 자세로 힘들게 가야한
다는 말이 이 계단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저기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당시
의 화려하고 웅장한 그 모습을 고스란히 되돌릴 수 있을런지....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든든한 한식으로 배를 채운 다음 태국으로 가기 위해
국경 도시인 포이펫으로 향한다. 여기로 올때 악몽같았던 비포장 황토길이 이틀간의 여행으
로 익숙해진 듯 처음 보다는 한결 견디기 쉬움을 느낀다. 국경을 넘고 늦은밤까지 버스를
달려 다음 목적지인 태국 파타야 로얄 클리프 호텔에 도착했다. 지난 몇일 동안 60년대부터
2005년까지의 세월을 체험했면 잘못된 말일까?를 되뇌이며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맏긴다.
넷째 날 : 그동안의 힘든 여정을 감안해 오전엔 특별한 일정없이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호텔내 수영장에서 배구도 하며, 동양 제일의 시설을 자랑하는 호
텔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과연 태국이 천혜의 관광 자원과 더불어 최고의 시설을 통해 관광
대국의 자리 매김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느긋한 오전 휴식을 즐기고 점심은 태국 전통요리인 어묵과 쌀국수, 만두로 만든 ‘스
끼’를 먹고 쾌속정을 타고 패러세일링을 하는 곳으로 향했다. 쾌속정에 매달린 패러 그라
이딩을 타고 높은 하늘에서 새가 되어 날아가는 기분을 느낀다. 아래에 보이는 에머랄드 빛
의 바다는 얼마나 깨끗한지! 이 해역은 미역이나 해초류 등이 바다 식물이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전혀 나질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호섬으로 향했다. 3시
간 동안 제트 스키 2개를 임대해 맘껏 탈수 있도록 했다. 오토바이 타는 요령으로 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직선에서는 괜찮았지만 턴을 하는 과정에선 오토바이하곤 반대
로 몸의 중심축을 바깥으로 향해야만 편하게 돌 수 있는걸 알았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는 물결위를 철없는 애들 마냥 신나게 이리 저리 달리다간 저 멀리 섬
을 한바퀴 돌기도 하고 묘기 아닌 묘기도 까지 마스트했다.
열대 과일로 허기진 배를 보충하고, 세계 3대 공연중 하나라고 자랑하는 알카자쇼를 보러
시내로 나갔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네들이(트랜스잰드) 한없이 비참하고 슬픈 사연일런지
모르지만 태국에선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고 사회적 차별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과거 태국에서 전쟁이 빈발할 때 아들을 전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아들을 여장시키는 관
습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고착화된 것이라 하였다. 완벽한 몸매와 얼굴이 도저히 남자라
곤 보이질 않는다. 알카자 쇼를 처음 기획한 사람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쇼를 구상했고 공
연했다니까 그네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나마 이 쇼에 출
연하는 사람들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호르몬 주사비,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낸다는 것이다. 쇼를 마치고 랍스타를 먹기 위해 타파야 시장으로 갔다. 길
가포장마차에선 온갖 곤충(전갈, 귀뚜라미 등등)들을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는데 그
중 관광 기념으로 전갈을 한 마리 먹고 싶었는데 혼잡한 인파에 일행을 놓치는 바람에 그냥
호기심으로만 간직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해변에 위치한 식당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랍스타와 왕새우 맥주를 곁들였는데, 먹음
짐스러운 만큼 여기서도 랍스타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식사 후 타파야 시내 관광을 했
는데 온갖 인종들로 복적이는 그야말로 거리의 명칭이 어울리는 곳이었다(국제거리). 킥복
싱, 디스코텍, 카페 등등 다양한 종류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불야성을 이룬 곳이었다.
다섯째 날 : 호텔 수영장에서 한가로이 수영하다가 편을 나누어 배구하면서 오전을 보냈고
점심으로 현지식인 파인애플 속을 파내고 볶음밥을 넣은 ‘카우익 사팔로’를 먹고 농눅 빌
리지를 향했다. 제주도에 있는 식물원과 비슷하지만 온실이 아닌 자연상태에서 식물을 운치
있게 조경한곳이었다. 더불어 태국 전통 민속춤, 코끼리 쇼 등을 관람하고 오는길에 한국인
이 경영하는 라텍스 공장을 견학하고 호텔에서 해산물, 육류, 미트볼, 튀김, 철판복음 등
온갖 종류의 음식으로 저녁을 넉넉하게 먹고 저녁 야외 수영장에 모여 열대 과일에 맥주를
곁들이며 이번 여행에 대한 각자의 간략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출발할 때
예상 금액을 훨씬 넘는 여행비가 부담되었다는 공통된 생각과 함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여
행 4일째부터 그 금액으로 어떻게 이런 좋은 호텔과 음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이번 여행을 주관한 동료에게 다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로얄에
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여섯째 날 :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타이거 존’을 갔다. 호랑이와 함께 사는 돼지, 돼지
의 젖을 먹는 호랑이 새끼, 악어를 안고 사진 한 장 찰칵, 돼지 경주, 악어 쇼, 악어 꼬치
에 맥주 한잔하고 태국의 왕궁과 에머랄드 사원을 찾았다. 동남아 지역의 대부분이 소승불
교를 신봉하는 지역이기에 같은 불교지만 우리의 대승 불교하고는 다른 점이 몇가지 있었
다.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승불교와 자기 자신의 해탈을 위해 정진하고 수
도하는 소승불교의 차이로 인해 부처상의 모습부터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사찰은 차분하고 은은한 느낌을 받는데 반해 이곳은 금박을 입힌 탑이며, 불상
에 진열된 각종 다양한 장신구 등 색상이 화려하고 인파가 많아서인지 어딘가 들뜬 분위기
를 느낄 수 있다. 왕궁과 사찰을 둘러보고 방콕의 시장을 거쳐 차오프라야강을 거쳐 보석
박물관이 열린다는 보석 건물 46층에서 넓게 펴쳐진 방콕 시내를 조망하고 세계 최대의 식
당이라는 로얄 드래곤에서 새끼 돼지 통구이로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저녁 퇴
근시간이어서 그런지 태국의 교통체증을 몸으로 체험하며 아쉬운 방콕과의 작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