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사

부여 왕흥사지 석제사리장치 뚜껑 선명한 진사 문양

한밭양반 2008. 4. 15. 11:18
보도자료
선명한 진사 문양을 드러내다
- 왕흥사지 목탑터 석제사리장치뚜껑 보존처리 결과 공개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지난해 왕흥사지 목탑터 발굴조사에서 수습된 석제사리장치뚜껑에 대한 보존처리 결과를 공개하였다.

왕흥사지 목탑터 심초석의 남쪽 끝단 중앙에 마련된 사리공을 덮고 있던 석제뚜껑은 가로 25㎝, 세로 19㎝, 두께 8㎝로 평면은 장방형, 단면은 지붕모양을 띤다. 일본에서는 각추대형(角錐臺形), 중국에서는 녹정형으로 불리며, 중국 북위~수대의 석제사리외함에서 자주 나타나는 형태가 이미지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랫면에는 심초석 사리공에 끼울 수 있도록 가로 16㎝, 세로 12㎝, 높이 0.8㎝의 촉과 같은 형태의 턱이 마련되어 있다.

석제뚜껑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오랫동안 습기가 많은 지하에 매장되어 약화된 재질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보존처리를 실시해왔다. 표면 상태를 확인하려고 이물질을 제거하던 중 뚜껑의 윗면에서 주칠(朱漆) 흔적이 확인되었다. 주칠이 고착된 흙덩어리와 함께 뚜껑 표면에 남아 있는 주칠에 대한 성분 분석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 의뢰하여 확인한 결과 진사(辰砂) 또는 주(朱)(HgS)로 밝혀졌는데 이것은 붉은색을 내는데 사용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안료이다.

진사의 사용은 고구려 고분 벽화, 무령왕릉 출토 석수, 나주 복암리 3호분 15호 옹관 내부에서 출토된 완, 6세기 전반의 해남 자라봉고분 석실 등 고분 출토품에서 다수 알려져 있다. 사리기의 경우 왕흥사지 출토품에 비해 시대는 뒤떨어지나 익산 왕궁리 5층석탑에 안치된 금동제사리외함, 금동제경판외함에서 진사로 채색된 예와 경북 칠곡 송림사 석제사리함의 주칠 채색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석제뚜껑에 드러난 문양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문양이 그려진 모든 면에는 모서리를 돌아가는 실선을 그려 각 면이 분할되도록 표현하였다. 윗면은 안쪽에 3중의 동심원문, 바깥쪽에 다시 2중의 동심원문이 그려져 있어 내외의 동심원문 사이에 반원문을 연속으로 시문하여 전체적으로 연화문 또는 중국 한대(漢代) 거울에 보이는 내행화문(內行花文)처럼 보인다. 여기에 네 꼭짓점에는 삼엽문이 그려져 장식적 요소를 더하였다. 옆면은 4면이 동일한 모티브로 되어 있는데 중심에 옆에서 바라본 모습의 연화좌(蓮華座)를 두고 좌우에 당초문계 문양을 혼합한 형상이다.

이러한 당초문 등 식물계통의 문양은 중국 남북조시대 불교미술에 융합되어 대대적으로 유행하는데 연화문과 같은 중심 문양에 장식적 요소를 더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많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 벽화나 금속공예품, 기와 등에서 상당수 확인할 수 있다.

왕흥사지 목탑터 심초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지난 1월에 열린 국제학술대회(주제 : 扶餘 王興寺址 出土 舍利器의 意味)를 통해 봉안 방법과 사리용기의 형태 등에서 중국 남북조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학계에 주목을 끈 바 있다. 이번 석제사리장치뚜껑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주칠과 문양은 절대연대를 가진 국내 최초의 사례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붉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나타낸 문양은 안료의 재료적인 측면에서나 문양의 도상면에서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를 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주칠은 벽사 또는 제액의 의미도 있으므로 장제(葬制)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붙임 : 사진자료









담당자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김낙중, 한송이
전화번호 : 041-833-0305


게시일 2008-04-14 11:31:00.0